불가능의 세계
이런 시대에 사회의 꿈과 마음을 냉정하게 짚어가는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밀스가 50여 년 전에 약속했던 '상상력'이 더 이상 아니다. 우리 시대의 상상력은 기업에서 훈련시키고, 자기계발 속에서 육성되고 실현되는 목적합리적 행위의 한 유형으로 전락하여, "측정가능한 측정" 시스템의 내부에 포섭되었다. 그것은 천박해졌고, 진부해졌고, 개인화되었다. 그것은 세계의 구성, 구축, 연결, 건설에 노골적으로 복무하고 있으며, 소위 창조계급이나 창조경제를 통해 생성되어 있는 제도적, 물질적, 문화적 회로들 속에서 (재)생산되고 가치화된다. 상상력의 세계는 여전히 발전과 진보와 개발의 꿈을 대표한다. 상상력을 예찬하면서, 상상력을 강조하고, 거기에 내포된 인간의 창조력을 중시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미래를 ..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하라.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이 몇 시인지.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
밥풀때기와 개흘레꾼을 위한 레퀴엠 0 열병 같은 5월이 지난 캠퍼스에는 구호들이 난무했다. 그러다가 성난 구호들을 무색하게 만든 여름이 지나갔다. 1991년은 그렇게 가을을 맞이했고, 성난 구호들은 어느덧 냉소적 아포리즘과 차분한 인용에 자리를 내주었다. 발 빠른 포스트모던의 선동가들은 “난장은 끝났는데 뭘 하고 있냐?”며 캠퍼스의 빨치산들을 비웃었고, 진지 구축에 한참이던 좌파의 이신론자들은 그람시를 인용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했다. “위기는 바로, 낡은 것은 죽어가는 반면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며 말이다. 그렇게 “죽음의 굿판”(김지하)과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은 캠퍼스를 압박했다. 죽음이 온전히 추도되지도 망각되지도 못한 채, 역사가 온전히 시작되지도 붕괴하지도 않은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