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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의 세계

김홍중, 사회학적 파상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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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사회학적 파상력

Soobeom 2017. 5. 19. 00:39

이런 시대에 사회의 꿈과 마음을 냉정하게 짚어가는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밀스가 50여 년 전에 약속했던 '상상력'이 더 이상 아니다. 우리 시대의 상상력은 기업에서 훈련시키고, 자기계발 속에서 육성되고 실현되는 목적합리적 행위의 한 유형으로 전락하여, "측정가능한 측정" 시스템의 내부에 포섭되었다. 그것은 천박해졌고, 진부해졌고, 개인화되었다. 그것은 세계의 구성, 구축, 연결, 건설에 노골적으로 복무하고 있으며, 소위 창조계급이나 창조경제를 통해 생성되어 있는 제도적, 물질적, 문화적 회로들 속에서 (재)생산되고 가치화된다. 상상력의 세계는 여전히 발전과 진보와 개발의 꿈을 대표한다. 상상력을 예찬하면서, 상상력을 강조하고, 거기에 내포된 인간의 창조력을 중시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미래를 장밋빛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21세기적 리얼리티의 고통과 비참을 가리는, 스크린에 투사된 허상인 경우가 더 많다. 기본적으로 의미와 상징으로 구성된 사회세계를 다루는 문화사회학 그리고 그 한 프로그램으로 제안된 마음의 사회학이 상상력이 아닌 파상력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밀스가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은 미래를 약속하는 힘이지만, 파상력은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한다. 예언하지도, 계몽하지도, 도덕적 훈계를 가하지도 못한다. 상상력이 보장하는 좋은 세계를 그려주지 못한다. 파상력은 상상력의 한계지점에서 나타나는, 능력과 무능력의 미분화된 체험 형식이다. 그것을 가지고, 혹은 그것 속에는 우리는, 파괴되어가는 것들과 새로이 생성되는 것들을 사회적 가시권과 가청권으로 끌어내어, 고뇌의 고통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다. 파상은 비판이 아니다. 꿈은 비판될 수 없다. 꿈이란 살과 삶의 절박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말이나 논리로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우발성과 사건성의 작용하에서, 자신의 기능이 소진되었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파상력은 사회를 특정 관점에서 디자인하려 하거나, 통치하려 하거나, 조직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인 것이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는 장소, 그 어딘가에서 예기치 않은 희망의 씨앗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되는 곳을 증언하기를 소망한다. 이런 점에서 파상력은 실천록적이고 단자론적이다. 파상력의 주체에게 총체성은 오직 세부에, 한 알의 밀알에, 하나의 영상에, 하나의 순간에, 하나의 실천에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김홍중, 사회학적 파상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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